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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7
    내면을 지향하기
  2. 2008/04/17
    영적 성숙
  3. 2008/04/07
    영생 학교
에고는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단물을 빱니다. 사람들은 왜 부정적인 감정을 좋아하는 걸까요? 그것은 에고가 부정적인 감정에서 그토록 많은 단물을 빨아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화내는 걸 사랑하고 피해자로 있는 걸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길은 자신의 에고가 그런 것을 사랑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에고는 자신에 대해 안됐다고 느끼는 걸 사랑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것을 사랑합니다. 에고는 죄책감에 흠뻑 젖어있는 걸 좋아합니다. 거기에는 은밀한 보상이 있지요. 거기서 벗어나는 비결은 그러한 은밀한 보상을 식별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화내고, 원망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부정성에서 빨아내는 단물을 기꺼이 놓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에고가 거기서 어떤 단물을 빨든,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그뿐입니다.



※출전 ; 호킨스 박사 한국 홈페이지, '인식과의 대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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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최상의 것이 됨으로써 우리는 자동적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합니다. 우리가 되는 그것으로써(by that which we have become) 사람들을 감화시킨다는 것의 살아있는 표본(a living example)과 살아있는 증명(living demonstration)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이 아닌 우리가 소리 없이 되는 그것으로써 감화시킵니다. 소리 없는 그것에는 어떠한 방어도 있을 수 없습니다.

호킨스 박사 강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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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님 '거듭나기' 사이트에서 퍼온글입니다(옮긴이 주).

사람이 크게 깨달으면 자기가 온 우주의 모든 영혼인 줄을 알며 모든 생명인 줄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살아왔던 전생들의 수많은 삶들이 사실은 자기라 할 것도 없이 그냥 이런저런 생명현상으로  나타나 그 시대, 그 상황, 그 인연에 따라 개체의 행복과 편안함, 부귀영화를 쫓으며 숨가쁘게 살았을 뿐이란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저도 영안으로 살펴보니 제 수많은 전생들은 다 나라고 할 것도 없는 이런저런 어중이 떠중이의 삶이었습니다. 때로는 신중하고 젊잖았지만 때로는 잡인에 불과 했습니다. 마치 큰 바다에 파도가 치면 이런저런 형체의 파도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듯이 저의 전생들은 그렇게 파도치는 대로 살아온 삶들이었습니다.

그 전생이 하도 많아 (지금 줄잡아 느껴지는것이 백개가 넘는 듯합니다) 어느 것 하나가 본래의 나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아마 지금의 이삶을 사는 이 개체(김아무개) 역시 나중에 보면 그본질이 그러할 것입니다. 나는 이 수많은 생들을 통하여 수없이 다양한 삶을 사는 그냥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 파동일 따름이란 것을 깊이 요즘 아주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의 삶이 제아무리 대단해도 전체 속에서는 그 모습이 다 그러할진대 대체 우리들은 이 허망한 개체의 삶을 그렇게도 애착하며 그것을 영생시키려 그렇게도 안달들을 하며 사이비 도판의 스승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이것저것 다 갖다 바치며 개체의 영생을 찾아 헤메이는 것일까요?

지금 자기란 개체를 천국이나 극락을 가게 구원해 달라고 열심히 신앙을 갖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저는 무섭고도 지독한 집착과 에고를 봅니다. 그리고 이 개체라는 존재 형태보다 더 위 차원의 훌륭하고 멋진 존재 차원이 있음을 모르는 무지함을 보고 느낍니다.

우리는 자기가 전체임을 자각할 때 전체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리이고 부처님자리입니다. 전체 자리란 개체의 내가 사라지고 전체의 나로서 존재 비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자리이지만 그렇다고 개체 의식이 완전히 무조건 다 끊어지는 자리가 아니며  내가 개체로서도 나타나려면 언제든지 다시 나타나고 아니면 또 그렇게 항상 전체로서 있을 수 있는 그런 자리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자리요, 존재와 비존재를 넘어선 자리요, 의식과 무의식을 다 가진 자리이며, 모든 가능성을 다 가진 잠재가능형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영생의 자리이며 모든 것의 궁극이 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가만히 살펴보세요. 우리가 이미 그런 존재가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이미 존재하다가 깊은 잠 속에서는 비존재로도 있고 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무의식으로도 있습니다. 꿈도 꾸다가 안꾸다가 개체이다가 때로는 전체 마음도 가지고....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요. 이미 전지전능한 다양한 모습의 자신의 능력 그대로 창조하고 존재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중에서 어느 한 형태나 한 존재 방식만을 자기라고 붙들고 이래야 한다느니 저래야 한다느니 집착함으로써 착각을 일으키면서 생사와 무지라는 무명속에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어째야 생사일여이고 윤회에서 벗어난다고 설법(?)을 하는데 제 말은 그게 다 오히려 번뇌망상이고 진짜 진리는 이미 우리에게 다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완전하다는 이것을 바로 자각하면 다 끝나요!

어느하나, 어느 한 경지에 그것을 자기라는 집착을 일으키면 반드시 그것은 생사를 가지게 됩니다. 오직 모든 것을 다 가진 전체 자리만이 생사를 넘어서 있는것, 이것은 당연한 우주법칙입니다. 모든 개체의 형상이나 경지는 나타나고 사라지고 생겼다가 무너지고 그러니까요. 그 개체 관점에서는 허무하고 덧없다고 생각할 지 모르나 존재의 중심이 이미 전체로 옮겨진 존재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망상임을 압니다.

이 자리에 서는 것이 바로 참 영생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기공을 하거나 영통을 하거나, 신통을 하거나 간에  그런 것 역시 모두 다 내가 본래 가진 능력을 한 번 제대로 잘 써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마치 그림 배우기, 수영 배우기나 자전거 배우기 같은 것입니다. 잘 배우면 더 좋지요. 다채롭고 더 깊고 생명의 본질을 만끽하는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제대로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뭐가 기본입니까? 그것은 자기가 본래 어떤 존재인가 바로 이것을 깨쳐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본래 영생하는 존재임을 알아야 비로소 영생하는 것이라. 자기가 진짜 왕자임을 알아야 비로소 참으로 왕자답게 언행하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전도 몽상속에 꿈같은 삶의 고해 속에서 헤메게 되는 것이니 제 아무리 대단한 그림이나 수영이나 마술을 배우면 뭐하겠습니까?

저는 여러분께 지금 영생의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학교는 다른 말로 하자면 <영생스쿨>입니다. 이거 참 생각해 볼수록 중요하고도 대단한 말입니다.

누구 위신력 덕에 천당가고 극락가는 욕심이나 청탁하러 댕기는 비굴하고 욕심쟁이들(정신적인 어린아이라면 이해하지만) 행동 거 좀 이제 그만하고 자기가 자신안에 들어있는 하나님, 부처님을 제대로 깨달아서 참으로 거듭나 진정한 영생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내 안에 이미 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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